달궈진 산은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낙엽자리인가
글. 추성아(큐레이터)
“그건 겨울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봄이 될 때마다 나도 그처럼 흥분합니다. 이곳에서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만, 봄이 무르익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까지 아마 2-3년은 걸릴 겁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의 발레'라고 부릅니다…주의 깊게 살핀다면 알아챌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곳에서는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이 나를 위해 자라납니다. 이는 아주 거대한 주제이고, 내가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는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 마틴 게이퍼드, 『다시, 그림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2019년, 입춘이 지나간 겨울의 끝자락 즈음 문규화의 작업실을 방문하였다. 부엌 창 밖으로 보이는 인왕산은 겸재 정선(鄭敾)의 물을 머금은 적묵(積墨)의 <인왕제색도> 봉우리와 가까운 시점으로 보이듯 작가는 그 아래 한적한 동네에 머문다. 인왕산 바로 아래, 그림 그리는 작가는 정작 둥그런 바위의 인왕산을 두고 저 멀리 아이슬란드와 가깝다면 가까울 강원도의 산들을 찾아 나선다. 눈이 대부분 녹은 여름의 아이슬란드와 12월 한 겨울의 강원도 정선과 영월, 청평의 산들은 어째 비슷하다. 문규화의 산들은 한 번에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고 축축하게 물먹은, 감각만 존재하는, 거신 벌거벗은 날 것의 풍경이다. 바람과 태양을 알고 계절들과 손잡는 그는 미묘하게 건드는 자연의 변화에 대한 자연스러움이 지당하게 느낄 정도로 풍경이라는 것과 가까이하려 한다. 마치 도시를 다녀보지 않은 사람처럼 산을 다니는 것, 도시에서의 삶이 작가에게 보잘 것 없고 더 작게 느껴져 자연을 바깥에서 이해했음을 알기에 자연을 속으로부터 이해하려고 드는 것 같다. 문규화의 풍경에 대한 이해의 태도는 풍경을 더욱 분명하게 바라보기 위해 성실하고, 단순하고, 거짓 없이 풍경에 다가가려 한다.
문규화는 풍경을 그리는 동세대 작가들 중 매우 보기 드문 “진짜 화가”일 것이다. 그는 사진 이미지를 보고 그리는 페인터와 상상 속의 풍경을 그리는 페인터와 다르다. 그는 작은 드로잉북과 수채화 도구 그리고 연필을 챙겨 산을 찾아다니며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 대신 그 순간 자신이 감각한 실제 산을 일차적인 드로잉 에스키스 혹은 그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수채화 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유화와 아크릴 작업의 경우, 수채화 작업을 이미지 삼아 캔버스 화면으로 풍경의 일부 혹은 전체를 옮겨온다. 이와 같은 고전적인 작업의 방식은 사진을 통해서 잘 그릴 수 없다는 작가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사진으로는 실제 생활에서처럼 부피감을 느끼고 볼 수 없으며 공간이 아닌 표면만을 지각한다. 이미지라는 것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거나 납작하게 변환되어 풍경이 담고 있는 시각적인 것 외의 요소들은 누락된다. 그렇기에 문규화는 누락된 현실적인 요소들을 관찰하고자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의 풍경 화가들에게 일반적인 관행이었던 야외에서 스케치하고 회화를 그리는 방법과 가장 유사한 방식을 택하고자 한다. 분명하게 본다는 것의 핵심은 전적으로 현실적인 지점에 가까우며 즐거움을 위한 비현실적인 관찰일 수도 있듯이, 그는 ‘바라보기’에서 붓질까지의 즐거움을 보다 극대화하여 몸소 실천한다.
마틴 게이퍼드(Martin Gayford)의 『다시, 그림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A Bigger Message: Conversations with David Hockney)』(2012)에서 풍경화로는 더 이상 어떤 일도 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우리에게 풍경화라는 것은 당연하고 낡게 보일 수 있다는 모더니스트 평론가들의 말에 호크니는 풍경은 그 정도로 낡지 않았다고 언급한다. 이는 세대마다 맞닥뜨리고 체감하는 풍경은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현재의 풍경을 과거의 풍경과는 새로운 방식으로 습득함을 보여준다. 문규화의 산과 계곡, 들판의 소박함은 별다를 것 없어 보일 수 있으나 그의 수채화 작업은 연초점(soft focus)으로 그린 것처럼 색과 색조뿐만 아니라 다양한 선과 층을 포함하고 있다. <달궈진 산>(2017), <습지>(2017), <새벽>(2017)은 작가가 경험한 아이슬란드 한 바퀴로 해가 뜨고 지는 위치에 따라 사계절을 동시에 담고 있다. 수채화 습작에서 볼 수 있듯이 눈이 녹은 후 풀은 물을 먹음으로 해가 뜬 자리와 색이 다르다. 또한, 눈이 녹은 후에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풀과 나무의 형태가 달라지면서 산의 형태 또한 달라진다. 유독 이끼 낀 산이 많은 습한 아이슬란드 풍경은 우리가 상상해봄직한 눈 덮인 산의 모습과 다르다. 이처럼, 하나의 산 안에서 시각적으로 많은 것들이 보이기 때문에 작가는 빛, 바람, 물과 같은 주변적인 요소를 기준 삼아 산이라는 풍경을 그 자리에서 지각하고 걸러낸다. 나아가, 그에게 특정 장소는 중요하지 않고 피부로 감각할 수 있는 끈적임과 물컹함과 눈으로 더듬어 나갈 수 있는 촉각적인 요소의 작업 방식에 집중한다.
<산의 기록>(2019) 연작은 12월의 영월을 담은 여덟 개의 멀티 이미지와 같은 작은 수채화 작업이다. 물을 머금고 단번에 칠한 단순하고 시원한 붓질에서 중간중간 붓끝 혹은 붓 안쪽으로 잠시 동안 멈춰 멍울이 맺힌 흔적에 작가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보았을지 상상해본다. 저 멀리 바라본 넓은 면적의 산언저리에 꺾인 단면을 포착했을지, 바람에 의해 유독 특정 나뭇잎이 움직였을지, 빛에 의해 그림자가 급격하게 드리운 지점일지 혹은 잠시 숨 고르기를 했을지. 산을 덮고 있는 흙이나 나무, 풀의 방향에 따라 붓의 방향도 달라진다. 이 연작은 시간을 통과하듯이 시간에 따라 급격히 물감이 쌓이는 층과 색이 달라져 작가의 기억 속에 안착된 감각들로 채워져 있다. 그가 적극적으로 산을 기록하려는 의지는 기억과 관찰이 매우 사적인 지각과 회화의 한 요인으로 분명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기억과 함께 대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각기 다른 기억을 갖고 각기 다른 요소가 작용하듯이 객관적인 시각이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가 그것을 되새길 때 즈음 잊혀질 정도로 빨리 희미해지기에, 눈으로 본 것을 기억하는 시각과 기억 능력을 높이는 연습은 작가가 습관적으로 나가서 바로 그리고자 하는 의지와 맞닿아 있다.
문규화는 야외에서, 즉 주제 안에서의 스케치와 작업실에서의 기억을 통해 그린 것들로 화면을 빽빽하게 채색해 나가며 ‘샙 그린(Sap Green)’, ‘비리디안 에매랄드(Viridian Emerald)’와 같은 강렬한 녹색으로 형태의 윤곽선을 날카롭게 하여 경계를 둔다. 그의 유화, 아크릴 작업은 산 전경을 그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산봉우리에 시선을 돌린다. 유일하게 작업실에서 시작하고 마무리되는 캔버스 작업은 산의 가장 큼직한 면만을 바라보면서 형태를 단순화한다. 기하학적인 형태에 가까워진 외곽선이 뚜렷한 산봉우리는 수채화 작업을 이미지 자료로 활용하여 더욱 가까이 들여다 봄으로써 부분들을 부각하는데 충실히 한다. 근작인 <산모퉁이>(2019), <해거름>(2019), <백야>(2019), <언 산>(2019)은 홀로 솟은 산 봉우리를 렌즈로 줌 인(zoom-in)하여 가까이 바라본 것 같으나, 수채화 작업처럼 풍경을 감각적으로 관찰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수채화의 경우에 물을 먹는 재료의 특성으로 당시 작가가 지각했을 주변의 요소가 분명하게 담겨있지만, 유화 작업은 먼 봉우리를 가까이하여 큐비즘(Cubism)에서 사물과 풍경을 바라보듯이 각각의 단면들을 헤집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문규화가 중요시했던 빛과 물과 같은 자연의 요소는 탈락되고 원색적인 색으로 화면을 가득 메운다. 동시에 그는 산을 하나의 사물처럼 대상화 하여 시간을 정지시켜 놓고 표면을 해부하면서 자체적으로 중립을 선언한다.
반면, 캔버스 천 뒷면을 배경으로 그린 가장 큰 그림의 <먹 산>(2019)은 산봉우리의 단면을 눈으로 조각내어 파편적으로 훑는다. 다른 캔버스 작업과 달리 천 뒷면의 갈색 화면을 여백으로 두어 아크릴로 옅게 펴 바른 붓 터치는 산 표면의 습한 흙냄새가 나는 것 같다. 유독 짙은 녹색과 적갈색이 많이 드러나는 <먹 산>은 당시 작가가 기억하는 산의 모습이 감각적으로 수채화 작업과 연결되어 있다. 걸개그림과 같은 대형 화면 안에 솟은 산은 풍경 속의 존재이면서 또한 공간과 빛을 포착하듯이 제목에서처럼 “먹 산”이다. 공간은 경계가 없으면 알아차리기 힘들듯이 작가가 나눈 산의 단면들은 미로 같은 구조 안에서 단순한 방식으로 공간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이처럼, 그가 산을 인식하고자 하는 방식은 전적으로 기억에 의존하면서도 눈에 밟히는 시각적인 요소들을 지나치게 많이 포착하려 하지 않는다. 문규화는 시간에 의해 달궈진 산이나 눈이 갖 녹은 산에서 어디가 길이고 낙엽이 진 자리인지 더욱 분명하게 바라보기 위해 가장 자신 있게 풍경을 다룰 수 있는 태도로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On a Molten Mountain, Where is the Road and Where is the Foliage?
Written by Sungah Serena Choo (Curator)
Translated from Korean by Lynn Kim
In 2019, I visited Moon Kyu-hwa’s studio in the last moments of winter. Through the kitchen window, I see the misty grey Inwang Mountain looming beside Moon’s calm neighborhood. Right below the Inwang Mountain, the artist ignores the mighty slopes and sets out to find the mountains of Gangwon-do that resemble those of Iceland. The Icelandic landscape in the summer is oddly similar to that of Gangwon-do in its coldest time of winter. Moon Kyu-hwa’s mountains allow the viewer to experience all four seasons of the year in a single instant, and constitute the scenery of a wet, soggy, naked world in which only our senses exist. She tries to close the gap between herself and the vast landscape around her, as she navigates the winds and the sun and the ever-changing course of nature, and holds hands with the seasons flurrying by around her. She climbs the mountains as if she had never stepped foot into the city, and tries to understand the natural world after her years of focusing on nature in an urban world (which she deems as unimportant). She approaches the natural landscape to see it in its purest form: simple, unbiased, and honest.
Moon Kyu-hwa is a rare “true landscape artist” among her contemporaries. She is different from the painters who paint from a photograph or from memory. She seeks out mountains with a sketchbook, watercolors, and some pencils and goes straight to the watercolor work without any preliminary sketches in order to capture her immediate feelings and reflections on the spot. In the case of acrylic or oil painting, she uses her watercolor painting as reference to directly transfer the scene onto a canvas. This traditional method of capturing the scenery is due to Moon’s beliefs that a photo could never be a sufficient reference for a work of art; a photograph captures images only in a 2-dimensional space, and the flattening prohibits one from feeling the weight, depth and space of the world being captured. To observe the aspects of nature that would normally be left out in a 2-dimensional plane, Moon opts to sketch the world outside, as typical 18th and 19th century scenic artists have done. Her method of simultaneous observation and painting is her way of bodily expressing the joy of art in an amplified manner.
In Martin Gayford’s book A Bigger Message: Conversations with David Hockney (2012), Hockney critiques the standpoint of modernist critics who claim that scenic paintings are too commonized in our lives to create a lasting impact in the world anymore. He demonstrates how the way we encounter nature in our modern lives is different from the way artists of the past have approached and depicted the natural world. Moon Kyu-hwa’s mountains, creeks, and plains have a humility to them that may come off as insignificant to the fleeting viewer, but her watercolors include many dimensions of lines and layers within her soft-focus color tones. <Molten Mountain> (2017), <Drylands> (2017) and <Early Morning> (2017) depict the artist’s experiences of encountering all four seasons at once and seeing the sun rise and set in a loop during her time in Iceland. In those watercolors, the colors of the dewy grass are different from those of the plains where the sunlight has touched. Additionally, the direction of the wind after the snow has melted alters the shapes of grass and trees, which in turn changes the shape of the mountains on which they grow. Humid Iceland’s mossy mountains are different from the snowy mountains that we may be familiar with. Because a single mountain holds so many visual aspects, the artist recognizes and filters the various elements of light, wind, and water to decide which to emphasize in her artwork. For Moon, specific locations are unimportant; rather, she focuses on the tactile aspects of the natural world in her work, such as stickiness and lumpiness of the landscapes around her.
<Records of Mountains> (2019) is a small eight-piece series of watercolor paintings depicting the Gangwon-do mountainscapes in December. I take a moment to imagine what Moon was feeling and seeing in the moment when her soaking brush let out slow, colorful drops of water between its sweeping strokes. I wonder if she spotted the bent surface of the majestic mountain in front of her, if a certain leaf trembled from the breeze, if the shadows of nature approached the scene in an effortless swoop, or if the sunlight forced it to take a pause. Depending on the direction of the dirt, trees, and grass covering the mountain, the brush takes on a different angle. This series is filled to the brim with the senses that Moon retained, through the ever-changing layers of color dependent on the passing of time, as if her intention for the viewer is to take them through the barrier of time with her. It is evident that Moon’s determination to record the mountains is an effort to show us her intensely personal revelations as discovered in her process of observing and memorizing the world as she sees it. Because our memories of the past influences the way we approach the subjects of our present, there is no unbiased, uniform way of seeing anything in the world. Memories fade in the same time it takes for us to ingrain them in our minds, and Moon’s determination to paint what she sees in the same time as when she sees them is an attestment to her desire to improve her visual memory to boost herself as an artist.
Moon Kyu-hwa fills the space of her canvas with the memories of her visions within the subject matter, and sets a distance between the natural world and the world outside the art through the vivid, sharp colors such as sap green and viridian emerald that emphasize the shadows and angles of the natural landscape. Her oil and acrylic paintings do oftentimes depict the scenery around the mountain, but her primary focus lies in the peaks of the lofty mountains. She simplifies the complex forms and textures to only the wide surfaces, and the sharply angled mountaintops turn out to resemble that of a trigonometric form, as true to Moon’s intentions to dissect the forms in her preliminary watercolors. The recent artworks <Mountain Angle> (2019), <Sunset> (2019), <The Midnight Sun> (2019), <Frozen Mountain> (2019) are as if the lone peaks of mountaintops have been observed while “zoomed in”, but the sensual attitude of which the artist observes the scenery takes hold on the canvas in a completely unique way. Whereas the absorbent inks of watercolors richly depict the natural elements of the scene, oil paintings close the gap between the peak of the mountain and the viewer and navigates the dimensions of the subject matter in a manner similar to cubism. An intriguing aspect of these works is that the natural elements that Moon held to such high esteem in watercolor pieces (such as light and water) are stripped away, and the canvas is instead filled with rich primary colors. She objectifies grand mountains and stops the passage of time to dissect the surface, thus declaring a “middle ground” within the chaos of the natural world.
On the other hand, <Ink Mountain> uses the whole back surface of the canvas to allow our eyes to skim through the different “pieces” of a mountain peak. Unlike other canvas paintings, the brownish backside of the canvas cloth is left in empty space, and the light layers of acrylic paint produce the feeling of smelling the humid soil-surface of a mountain. The deep green and reddish clay tones of <Ink Mountain> are intertwined with the artist’s memory-based watercolor observations of the mountain. The proud mountain of the large space is both a figure of a natural landscape as well as a literal “Ink Mountain” that captures both space and light. Space is difficult to recognize without boundaries, and the artist’s division of the side surface of such a grand subject matter allows the viewer to understand the space of the artwork within a “maze-like” structure. The way Moon acknowledges and interacts with mountains is to rely on the memory of feeling, but does not attempt to capture an excessive number of visual aspects. Moon Kyu-hwa waits determinedly on her mountain, newly thawed and molten by time, until the day when she can figure out where the path ends and where the foliage star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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