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EXTS
작업실 안 밖
문규화 드로잉전
벽면을 가득 채운 베이킹 드로잉에는 빵을 만드는 과정이 담겨있다. 빵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그림인가 싶어 차례차례 보지만 어딘가 이상하다. 같은 과정이 여러 번 그려져 있기도 하고, 어떤 과정은 생략되어 있기도 하다. 정작 중요한 다른 재료나 계량값은 보이지 않는다. 그림을 그린 이는, 이미 손에 익을 대로 익어 머릿속에 훤히 그려지는 일련의 장면들을 툭툭 내뱉은 듯하다. 드로잉은 붓이라는 매개체를 거치지 않고 마치 손끝으로 그려진 것 같은데, 빵을 만들던 손끝은 사실 그림을 그리는 손끝이었다는 생각이 스친다.
문규화는 그림을 그리는 일상을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베이킹과 운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성분과 상태가 다른 재료를 넣어야 탄성 있는 반죽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작가는 그림에만 몰두하던 삶에 질감이 다른 여러 활동을 섞어 견고한 하루를 만들고는 한다. 일생을 캔버스와 마주해야 하는 것이 작가 된 자의 숙명이라지만, 네모난 화면은 수심을 알 수 없는 우물과 같아서 그곳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각자의 방법을 찾아야 했다. 자신을 지상에 머물게끔 만드는 방법, 자신을 다루는 방법. 주묵(朱墨)으로 그려진 베이킹 드로잉은 그것의 선명하고 강렬한 색감처럼 작가의 일상에 베이킹이 얼마나 분명하게 자리 잡고 있는지 보여준다. 잠이 들기 전 반죽을 빚어놓고, 자는 동안 숙성된 반죽을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오븐에 구워낸다. 하루의 끝과 시작을 베이킹에 내어준 그는 사이사이에 또 다른 일상적인 활동과 그림 그리는 일을 배치한다. 집이라고도, 작업실이라고도 불리는 그의 공간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자신의 삶이 균형을 이룰 수 있도록, 하루하루를 오롯이 자기 손으로 꾸려간다. 일상은 그렇게 드로잉이라는 흔적을 남겼다.
베이킹 드로잉의 맞은편, 작가가 작업실 밖에서 마주한 여느 나날의 장면이 그려져 있다. 홍수가 나 일대가 물로 가득했던 풍경, 가족의 장례를 위해 모인 사람들, 엉뚱하게 널브러져 있는 고양이, 친구가 들려준 이야기 속 무서웠던 눈빛, 그냥 상상하며 그린 무대, 파테크가 유행이던 시기 길거리에 보이던 파, 러닝하는 사람들, 창문을 열면 보이던 가지치기 당한 나무들, 여행에서 보았던 수영장의 수챗구멍. 시시하고도 평범한 이야기를 가진 그림이지만 오히려 작가가 품었던 슬픔과 행복, 호기심, 불안, 여유, 유머가 그대로 드러난다. 거침없으면서도 간결하게 내디딘 선은 무심하게 그려진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각각의 리듬이 자리 잡고 있다. 그리고 그 리듬은 선명한 자국이 되어 그림을 그렸던 그 당시 작가 자신을 떠올릴 수 있는 촉매제가 된다. 경험한 감각을 그린 그림은 사진보다도 더 선명한 사실을 담아내고 있었다.
작업실, 그림을 그리는 작업 공간이자 평범한 삶을 살아내는 생활의 터. 문규화는 지난 몇 년간 청운동에 위치한 2층짜리 작은 목조 주택을 작업실로 사용해왔다. 처음 들어오면서부터 수도관은 말썽이었고, 천장에서는 물이 샜으며, 방음도 엉터리에 아파트나 오피스텔에서는 본 적도 없는 종류의 벌레들을 보곤 했다. 하자에 골머리를 앓던 작가는 청운동 작업실을 벗어난 지금, 이제야 그곳을 그려낸다. 너울거리던 일상을 단단하게 만들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일까. 반죽을 하룻밤 동안 숙성시켜야 그다음 날 구워낼 수 있는 것처럼 작가는 켜켜이 자리 잡은 청운동에서의 시간을 간직해 두었고, 다시 끄집어내 그림에 옮겼다. 작업실 창밖으로 보이던 나무와 풀들, 한쪽에 놓인 침대, 빼곡하던 캔버스, 거실에 놓인 식탁, 2층으로 이어지는 계단, 그곳에 내리쬐던 햇볕까지. 그리곤 벽돌과 유리창을 세워 청운동 작업실을 완성했다. 하나씩 비우고, 또 하나씩 채우며 적당한 모양새로 맞춰지던 일상은 이제 온전한 제 자리를 찾아 그림이 되었다. 작업실의 안과 밖을 오가며 매일을 빚어내던 그가 습관처럼 남긴 드로잉과 우리는 마주한다. 어쩌면 내가 간직해온 하루하루의 조각도 여기에서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며 그 앞에서 서본다.
글/ 김정아
달궈진 산은 어디가 길이고 어디가 낙엽자리인가
글. 추성아(큐레이터)
“그건 겨울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봄이 될 때마다 나도 그처럼 흥분합니다. 이곳에서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만, 봄이 무르익는 순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기까지 아마 2-3년은 걸릴 겁니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의 발레'라고 부릅니다…주의 깊게 살핀다면 알아챌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곳에서는 마음을 사로잡는 것들이 나를 위해 자라납니다. 이는 아주 거대한 주제이고, 내가 자신 있게 다룰 수 있는 주제이기도 했습니다.”
- 마틴 게이퍼드, 『다시, 그림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
2019년, 입춘이 지나간 겨울의 끝자락 즈음 문규화의 작업실을 방문하였다. 부엌 창 밖으로 보이는 인왕산은 겸재 정선(鄭敾)의 물을 머금은 적묵(積墨)의 <인왕제색도> 봉우리와 가까운 시점으로 보이듯 작가는 그 아래 한적한 동네에 머문다. 인왕산 바로 아래, 그림 그리는 작가는 정작 둥그런 바위의 인왕산을 두고 저 멀리 아이슬란드와 가깝다면 가까울 강원도의 산들을 찾아 나선다. 눈이 대부분 녹은 여름의 아이슬란드와 12월 한 겨울의 강원도 정선과 영월, 청평의 산들은 어째 비슷하다. 문규화의 산들은 한 번에 사계절을 경험할 수 있고 축축하게 물먹은, 감각만 존재하는, 거신 벌거벗은 날 것의 풍경이다. 바람과 태양을 알고 계절들과 손잡는 그는 미묘하게 건드는 자연의 변화에 대한 자연스러움이 지당하게 느낄 정도로 풍경이라는 것과 가까이하려 한다. 마치 도시를 다녀보지 않은 사람처럼 산을 다니는 것, 도시에서의 삶이 작가에게 보잘 것 없고 더 작게 느껴져 자연을 바깥에서 이해했음을 알기에 자연을 속으로부터 이해하려고 드는 것 같다. 문규화의 풍경에 대한 이해의 태도는 풍경을 더욱 분명하게 바라보기 위해 성실하고, 단순하고, 거짓 없이 풍경에 다가가려 한다.
문규화는 풍경을 그리는 동세대 작가들 중 매우 보기 드문 “진짜 화가”일 것이다. 그는 사진 이미지를 보고 그리는 페인터와 상상 속의 풍경을 그리는 페인터와 다르다. 그는 작은 드로잉북과 수채화 도구 그리고 연필을 챙겨 산을 찾아다니며 자리에서 사진을 찍는 대신 그 순간 자신이 감각한 실제 산을 일차적인 드로잉 에스키스 혹은 그 과정을 생략하고 바로 수채화 작업에 들어간다. 그리고 유화와 아크릴 작업의 경우, 수채화 작업을 이미지 삼아 캔버스 화면으로 풍경의 일부 혹은 전체를 옮겨온다. 이와 같은 고전적인 작업의 방식은 사진을 통해서 잘 그릴 수 없다는 작가의 생각과 맞닿아 있다. 사진으로는 실제 생활에서처럼 부피감을 느끼고 볼 수 없으며 공간이 아닌 표면만을 지각한다. 이미지라는 것은 지나치게 비현실적이거나 납작하게 변환되어 풍경이 담고 있는 시각적인 것 외의 요소들은 누락된다. 그렇기에 문규화는 누락된 현실적인 요소들을 관찰하고자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의 풍경 화가들에게 일반적인 관행이었던 야외에서 스케치하고 회화를 그리는 방법과 가장 유사한 방식을 택하고자 한다. 분명하게 본다는 것의 핵심은 전적으로 현실적인 지점에 가까우며 즐거움을 위한 비현실적인 관찰일 수도 있듯이, 그는 ‘바라보기’에서 붓질까지의 즐거움을 보다 극대화하여 몸소 실천한다.
마틴 게이퍼드(Martin Gayford)의 『다시, 그림이다: 데이비드 호크니와의 대화(A Bigger Message: Conversations with David Hockney)』(2012)에서 풍경화로는 더 이상 어떤 일도 할 수 없다고 말할 정도로 우리에게 풍경화라는 것은 당연하고 낡게 보일 수 있다는 모더니스트 평론가들의 말에 호크니는 풍경은 그 정도로 낡지 않았다고 언급한다. 이는 세대마다 맞닥뜨리고 체감하는 풍경은 분명 다를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현재의 풍경을 과거의 풍경과는 새로운 방식으로 습득함을 보여준다. 문규화의 산과 계곡, 들판의 소박함은 별다를 것 없어 보일 수 있으나 그의 수채화 작업은 연초점(soft focus)으로 그린 것처럼 색과 색조뿐만 아니라 다양한 선과 층을 포함하고 있다. <달궈진 산>(2017), <습지>(2017), <새벽>(2017)은 작가가 경험한 아이슬란드 한 바퀴로 해가 뜨고 지는 위치에 따라 사계절을 동시에 담고 있다. 수채화 습작에서 볼 수 있듯이 눈이 녹은 후 풀은 물을 먹음으로 해가 뜬 자리와 색이 다르다. 또한, 눈이 녹은 후에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풀과 나무의 형태가 달라지면서 산의 형태 또한 달라진다. 유독 이끼 낀 산이 많은 습한 아이슬란드 풍경은 우리가 상상해봄직한 눈 덮인 산의 모습과 다르다. 이처럼, 하나의 산 안에서 시각적으로 많은 것들이 보이기 때문에 작가는 빛, 바람, 물과 같은 주변적인 요소를 기준 삼아 산이라는 풍경을 그 자리에서 지각하고 걸러낸다. 나아가, 그에게 특정 장소는 중요하지 않고 피부로 감각할 수 있는 끈적임과 물컹함과 눈으로 더듬어 나갈 수 있는 촉각적인 요소의 작업 방식에 집중한다.
<산의 기록>(2019) 연작은 12월의 영월을 담은 여덟 개의 멀티 이미지와 같은 작은 수채화 작업이다. 물을 머금고 단번에 칠한 단순하고 시원한 붓질에서 중간중간 붓끝 혹은 붓 안쪽으로 잠시 동안 멈춰 멍울이 맺힌 흔적에 작가는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보았을지 상상해본다. 저 멀리 바라본 넓은 면적의 산언저리에 꺾인 단면을 포착했을지, 바람에 의해 유독 특정 나뭇잎이 움직였을지, 빛에 의해 그림자가 급격하게 드리운 지점일지 혹은 잠시 숨 고르기를 했을지. 산을 덮고 있는 흙이나 나무, 풀의 방향에 따라 붓의 방향도 달라진다. 이 연작은 시간을 통과하듯이 시간에 따라 급격히 물감이 쌓이는 층과 색이 달라져 작가의 기억 속에 안착된 감각들로 채워져 있다. 그가 적극적으로 산을 기록하려는 의지는 기억과 관찰이 매우 사적인 지각과 회화의 한 요인으로 분명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우리가 기억과 함께 대상을 바라보는 것처럼 각기 다른 기억을 갖고 각기 다른 요소가 작용하듯이 객관적인 시각이라는 것은 언제나 존재하지 않는다. 기억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우리가 그것을 되새길 때 즈음 잊혀질 정도로 빨리 희미해지기에, 눈으로 본 것을 기억하는 시각과 기억 능력을 높이는 연습은 작가가 습관적으로 나가서 바로 그리고자 하는 의지와 맞닿아 있다.
문규화는 야외에서, 즉 주제 안에서의 스케치와 작업실에서의 기억을 통해 그린 것들로 화면을 빽빽하게 채색해 나가며 ‘샙 그린(Sap Green)’, ‘비리디안 에매랄드(Viridian Emerald)’와 같은 강렬한 녹색으로 형태의 윤곽선을 날카롭게 하여 경계를 둔다. 그의 유화, 아크릴 작업은 산 전경을 그리기도 하지만 대부분 산봉우리에 시선을 돌린다. 유일하게 작업실에서 시작하고 마무리되는 캔버스 작업은 산의 가장 큼직한 면만을 바라보면서 형태를 단순화한다. 기하학적인 형태에 가까워진 외곽선이 뚜렷한 산봉우리는 수채화 작업을 이미지 자료로 활용하여 더욱 가까이 들여다 봄으로써 부분들을 부각하는데 충실히 한다. 근작인 <산모퉁이>(2019), <해거름>(2019), <백야>(2019), <언 산>(2019)은 홀로 솟은 산 봉우리를 렌즈로 줌 인(zoom-in)하여 가까이 바라본 것 같으나, 수채화 작업처럼 풍경을 감각적으로 관찰하는 태도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수채화의 경우에 물을 먹는 재료의 특성으로 당시 작가가 지각했을 주변의 요소가 분명하게 담겨있지만, 유화 작업은 먼 봉우리를 가까이하여 큐비즘(Cubism)에서 사물과 풍경을 바라보듯이 각각의 단면들을 헤집는다. 여기서 흥미로운 지점은 문규화가 중요시했던 빛과 물과 같은 자연의 요소는 탈락되고 원색적인 색으로 화면을 가득 메운다. 동시에 그는 산을 하나의 사물처럼 대상화 하여 시간을 정지시켜 놓고 표면을 해부하면서 자체적으로 중립을 선언한다.
반면, 캔버스 천 뒷면을 배경으로 그린 가장 큰 그림의 <먹 산>(2019)은 산봉우리의 단면을 눈으로 조각내어 파편적으로 훑는다. 다른 캔버스 작업과 달리 천 뒷면의 갈색 화면을 여백으로 두어 아크릴로 옅게 펴 바른 붓 터치는 산 표면의 습한 흙냄새가 나는 것 같다. 유독 짙은 녹색과 적갈색이 많이 드러나는 <먹 산>은 당시 작가가 기억하는 산의 모습이 감각적으로 수채화 작업과 연결되어 있다. 걸개그림과 같은 대형 화면 안에 솟은 산은 풍경 속의 존재이면서 또한 공간과 빛을 포착하듯이 제목에서처럼 “먹 산”이다. 공간은 경계가 없으면 알아차리기 힘들듯이 작가가 나눈 산의 단면들은 미로 같은 구조 안에서 단순한 방식으로 공간을 느낄 수 있도록 돕는다. 이처럼, 그가 산을 인식하고자 하는 방식은 전적으로 기억에 의존하면서도 눈에 밟히는 시각적인 요소들을 지나치게 많이 포착하려 하지 않는다. 문규화는 시간에 의해 달궈진 산이나 눈이 갖 녹은 산에서 어디가 길이고 낙엽이 진 자리인지 더욱 분명하게 바라보기 위해 가장 자신 있게 풍경을 다룰 수 있는 태도로 그 자리에서 기다린다.
On a Molten Mountain, Where is the Road and Where is the Foliage?
Written by Sungah Serena Choo (Curator)
Translated from Korean by Lynn Kim
In 2019, I visited Moon Kyu-hwa’s studio in the last moments of winter. Through the kitchen window, I see the misty grey Inwang Mountain looming beside Moon’s calm neighborhood. Right below the Inwang Mountain, the artist ignores the mighty slopes and sets out to find the mountains of Gangwon-do that resemble those of Iceland. The Icelandic landscape in the summer is oddly similar to that of Gangwon-do in its coldest time of winter. Moon Kyu-hwa’s mountains allow the viewer to experience all four seasons of the year in a single instant, and constitute the scenery of a wet, soggy, naked world in which only our senses exist. She tries to close the gap between herself and the vast landscape around her, as she navigates the winds and the sun and the ever-changing course of nature, and holds hands with the seasons flurrying by around her. She climbs the mountains as if she had never stepped foot into the city, and tries to understand the natural world after her years of focusing on nature in an urban world (which she deems as unimportant). She approaches the natural landscape to see it in its purest form: simple, unbiased, and honest.
Moon Kyu-hwa is a rare “true landscape artist” among her contemporaries. She is different from the painters who paint from a photograph or from memory. She seeks out mountains with a sketchbook, watercolors, and some pencils and goes straight to the watercolor work without any preliminary sketches in order to capture her immediate feelings and reflections on the spot. In the case of acrylic or oil painting, she uses her watercolor painting as reference to directly transfer the scene onto a canvas. This traditional method of capturing the scenery is due to Moon’s beliefs that a photo could never be a sufficient reference for a work of art; a photograph captures images only in a 2-dimensional space, and the flattening prohibits one from feeling the weight, depth and space of the world being captured. To observe the aspects of nature that would normally be left out in a 2-dimensional plane, Moon opts to sketch the world outside, as typical 18th and 19th century scenic artists have done. Her method of simultaneous observation and painting is her way of bodily expressing the joy of art in an amplified manner.
In Martin Gayford’s book A Bigger Message: Conversations with David Hockney (2012), Hockney critiques the standpoint of modernist critics who claim that scenic paintings are too commonized in our lives to create a lasting impact in the world anymore. He demonstrates how the way we encounter nature in our modern lives is different from the way artists of the past have approached and depicted the natural world. Moon Kyu-hwa’s mountains, creeks, and plains have a humility to them that may come off as insignificant to the fleeting viewer, but her watercolors include many dimensions of lines and layers within her soft-focus color tones. <Molten Mountain> (2017), <Drylands> (2017) and <Early Morning> (2017) depict the artist’s experiences of encountering all four seasons at once and seeing the sun rise and set in a loop during her time in Iceland. In those watercolors, the colors of the dewy grass are different from those of the plains where the sunlight has touched. Additionally, the direction of the wind after the snow has melted alters the shapes of grass and trees, which in turn changes the shape of the mountains on which they grow. Humid Iceland’s mossy mountains are different from the snowy mountains that we may be familiar with. Because a single mountain holds so many visual aspects, the artist recognizes and filters the various elements of light, wind, and water to decide which to emphasize in her artwork. For Moon, specific locations are unimportant; rather, she focuses on the tactile aspects of the natural world in her work, such as stickiness and lumpiness of the landscapes around her.
<Records of Mountains> (2019) is a small eight-piece series of watercolor paintings depicting the Gangwon-do mountainscapes in December. I take a moment to imagine what Moon was feeling and seeing in the moment when her soaking brush let out slow, colorful drops of water between its sweeping strokes. I wonder if she spotted the bent surface of the majestic mountain in front of her, if a certain leaf trembled from the breeze, if the shadows of nature approached the scene in an effortless swoop, or if the sunlight forced it to take a pause. Depending on the direction of the dirt, trees, and grass covering the mountain, the brush takes on a different angle. This series is filled to the brim with the senses that Moon retained, through the ever-changing layers of color dependent on the passing of time, as if her intention for the viewer is to take them through the barrier of time with her. It is evident that Moon’s determination to record the mountains is an effort to show us her intensely personal revelations as discovered in her process of observing and memorizing the world as she sees it. Because our memories of the past influences the way we approach the subjects of our present, there is no unbiased, uniform way of seeing anything in the world. Memories fade in the same time it takes for us to ingrain them in our minds, and Moon’s determination to paint what she sees in the same time as when she sees them is an attestment to her desire to improve her visual memory to boost herself as an artist.
Moon Kyu-hwa fills the space of her canvas with the memories of her visions within the subject matter, and sets a distance between the natural world and the world outside the art through the vivid, sharp colors such as sap green and viridian emerald that emphasize the shadows and angles of the natural landscape. Her oil and acrylic paintings do oftentimes depict the scenery around the mountain, but her primary focus lies in the peaks of the lofty mountains. She simplifies the complex forms and textures to only the wide surfaces, and the sharply angled mountaintops turn out to resemble that of a trigonometric form, as true to Moon’s intentions to dissect the forms in her preliminary watercolors. The recent artworks <Mountain Angle> (2019), <Sunset> (2019), <The Midnight Sun> (2019), <Frozen Mountain> (2019) are as if the lone peaks of mountaintops have been observed while “zoomed in”, but the sensual attitude of which the artist observes the scenery takes hold on the canvas in a completely unique way. Whereas the absorbent inks of watercolors richly depict the natural elements of the scene, oil paintings close the gap between the peak of the mountain and the viewer and navigates the dimensions of the subject matter in a manner similar to cubism. An intriguing aspect of these works is that the natural elements that Moon held to such high esteem in watercolor pieces (such as light and water) are stripped away, and the canvas is instead filled with rich primary colors. She objectifies grand mountains and stops the passage of time to dissect the surface, thus declaring a “middle ground” within the chaos of the natural world.
On the other hand, <Ink Mountain> uses the whole back surface of the canvas to allow our eyes to skim through the different “pieces” of a mountain peak. Unlike other canvas paintings, the brownish backside of the canvas cloth is left in empty space, and the light layers of acrylic paint produce the feeling of smelling the humid soil-surface of a mountain. The deep green and reddish clay tones of <Ink Mountain> are intertwined with the artist’s memory-based watercolor observations of the mountain. The proud mountain of the large space is both a figure of a natural landscape as well as a literal “Ink Mountain” that captures both space and light. Space is difficult to recognize without boundaries, and the artist’s division of the side surface of such a grand subject matter allows the viewer to understand the space of the artwork within a “maze-like” structure. The way Moon acknowledges and interacts with mountains is to rely on the memory of feeling, but does not attempt to capture an excessive number of visual aspects. Moon Kyu-hwa waits determinedly on her mountain, newly thawed and molten by time, until the day when she can figure out where the path ends and where the foliage starts.
축축한 초록
글 서민정
1. 축축한 초록을 붙잡기 위한 여정
최근 3년 작가는 단지 그림을 그리기 위해 서울을, 그리고 한국을 떠나 있었다. 페인팅 작가에게 그림을 그리기 위한 ‘공간’, ‘장소’, 일종의 작업실은 필수적이다. 하지만 작가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서 나갔어요” 라고 말한다. 2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작가는 산을 그리기 위해 산이 많은 지역으로 나갔다. 문규화 작가에게, 그리고 그녀의 작업에, 산에 대한 지대한 관심이 지금처럼 흥건했던 것은 아니었다. 그렇기에 작가가 산을 그리기 위해 여기 저기를 돌아 다닌 여정은 작가가 무엇을 어떻게 바라 보고 있는지에 대한 이야기로 연결된다.
아이슬란드 링로드를 따라 돌며 멀리 보이는 산의 형태와 색감, 만질 수는 없고 상상 할 수는 있는 질감과 온도를 담아 내려 했던 작가의 과감한 외출은 작업실 한 켠을 차지 하고 있던 파 한 뿌리를 바라보고 감각을 집중했던 시간과 맞닿아 있다. 자연과 단절 된 도심의 건물 구조 안에 혼자 살던 작가는 풍경이 없고 식물을 마주할 일이 없는 공간에서 그래도 초록의 자연적 성격을 접하고 싶었다. 식재료로 사들인 초록의 채소를 바라보았고 여러 가지 이유로 집안에 들어 오게 되었던 식물을 기르게 되었는데 그것들이 생장하기도하고 시들어 가기도 하는 모습, 즉 물성이 변해가는 모습에서 두려움과 거부감 같은 감정이 동반되었다. 파는 마트에서 사 올 때와 달리 점차 색이 빠졌고 크기는 작아졌으며 말라 비틀어졌고 단단함은 사라졌다. 냉장실에서 보낸 시간의 끝에는 짓물러 진액이 흐르고 물렁한 상태의 어떤 것이 남았다. 그것 역시 파였다. 선물 받은 꽃다발도 마찬가지였다. 시들고 말라가는 꽃다발을 가까스로 유지해 주던 물은 썩었고 미끈하고 물컹하게 냄새를 풍겼다. 작가는 식물을 살아 있는 동안 가장 ‘그것다운’ 모습으로서 그 식물 자체를 인지하고 있던 자신의 생각에 파장을 불러 일으킨 사소한 경험을 거쳐 새롭게 사유하기 시작했다.
2. 드로잉
“식물을 무서워하는 부분이 있어요”
작가는 식물의 변화, 특히 물컹하게 썩어가는 모습에서 느낀 감각에 불편함을 느낀다. 불편한 감각은 그것으로 그치지 않고 새롭게 얻은 경험이 되어 자연의 유기적인 현상을 통해 생명의 경계를 시각화 하는 여정을 걷게 되었다. 작가는 파와 작은 화분을 들여다보며 지금 바라보는 파의 형태와 질감들을 어떻게 하면 고정시킬 수 있을까에 대한 상상을 시작하게 된다. 그것을 고정시키고 변화를 정지시키는 방법으로 택한 것은 찰흙에 파를 꽂는 일이었다. 찰흙에 꽂힌 파는 그 상태로 하나의 조각, 기념비가 된다. 고정된 것이 없고 시시각각 변화하는 자연물의 한 순간을 고정시켜 보겠다는 어찌 보면 터무니없고 한편으로는 귀여운 이 의지는 상상의 영역에서만 존재하는 실험이며 어떤 면에서 주술적, 기복적인 면마저 느껴져 조각이나 기념비가 행하는 의미와도 교차된다. 찰흙에 꽂힌 파는 여전히 변하고 찰흙마저도 변하겠지만 이미 작가에게 그 순간은 변하지 않는 것이며 고정되고 정지된 상태로 여겨 지는 것이다. 그리고 이미 ‘박제’된 파를 그리며 다시 한 번 그것을 고정시키고 기록한다. 작가는 이런 일련의 방식을 단지 드로잉이며, 연습의 과정이라고 했다.
‘생각과 상상을 남기는 드로잉적인 작업’은 근작의 주요 소재가 된 ‘산’을 담는 방식의 기초가 되며 지속하고 있는 연습이자 그가 집중하는 감각의 시작이다. 시각은 물론, 그가 체험하며 느낀 식물과 자연의 유기적 현상에서 느낀 두려움과 거부감은 촉각적으로도 강하게 남겨져 그 ‘축축한’ 것들을 평면적, 입체적 형상으로 표현 해 내고 있다.
3. 식물과 산
문규화는 방안의 작은 식물과 산이 다른 대상임을 인정하면서도 동일한 방식으로 접근해 왔다. 즉 작가는 이 둘을 풍경(landscape)으로 대함으로써 식물들을 실내에서 직접 보고 그것을 고정하여 그려내는 방식과 동일하게 산의 경우도 직접 대면하기 위해 나갔고 여러 장소를 방문했다. 바깥에 존재하는 산을 그릴 때는 촬영을 겸한 사생을 기본으로 한다. 오랜 시간 산을 바라 볼 수 없는 제한적인 환경이기에 빠른 시간 안에 드로잉을 하고 그 기록들을 중심으로 작업실에 가져와 다시 그것을 구현해 낸다. 대상을 바라보고 그것을 작가의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에서는 동일하나 실내 작업과 실외 작업에서의 감흥, 그것이 작가가 인위적으로 붙들어 놓은 것이냐(실내), 아니냐에 따라 작업의 성질은 매우 달라지게 된다. 그 차이는 각각의 현장이 다르기 때문에, 그 현장 안에 있는 작가의 상태가 다르기 때문에, 그리고 주어진 재료와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하지만 작가가 화면에 이미지를 표현해 내기 위한 공통의 관심은 형태와 색감, 즉흥적으로 느껴졌던 자연물들의 물성이다. 자연물이 가지는 ‘색감’, 변화하는 식물을 경험하면서 느낀 ‘물성’의 감각, 그것이 작업의 시작단계에서 주지했던 관심이었다.
문규화 작가의 작품 속 대상들의 형태는 굵직굵직하고 어딘지 모르게 단단한 무언가를 뚝뚝 떨어뜨리고 썰어낸 것처럼 보인다. 이는 이전에 대상을 세밀하게 찾아보려 했던 ‘신경쓰기’가 현장작업을 통해 무관해지고 무뎌졌기 때문이다. 현장 작업은 그 순간과 다음 순간의 흐름, 정해져 있는 시간을 최대치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작가는 그때의 현장에서 만들어 지고 있는 작업들이 자신의 것이라 느꼈다고 고백한다.
4. 축축한 초록
문규화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식물과 자연의 첫인상은 강직함이다. 이는 형태와 색감, 부드럽게 연이어지면서도 한편으로는 거친 힘이 가해진 붓질의 흔적, 무겁고 퍽퍽하게 쌓인 물감의 물성에서 연유한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작가는 반복해서 축축하고 눅눅한 느낌, 물과 바람과 햇볕에 의해 변해가는 생명, 끈적함과 물컹함, 습하게 고여있는 은밀한 장소들에 대해서 언급했다. 이는 작가가 식물과 산을 풍경으로, 특히 원경으로 보면서 큰 덩어리의 대상들로 툭툭 떠내지만 실은 그것들의 큰 움직임 속 작은 진동, 거친 기운 속 세밀한 기운, 생동하는 초록 속 썩는 일부, 그리고 죽음이 포함 된 시간을 아주 내밀하게 포함시키고 있다는 의미는 아닐까.
다시 돌아가서 결국 작가에게 파 한 줄기와 아이슬란드의 거대한 산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자연으로서 유기적인 대상으로서 그것은 자연을 상징하는 색 초록을 지니고 있으나 그 안에 담긴 이면의 축축함을 함께 가지고 가는 것이며 그것이 작가가 자연을 대하고 바라보는 작가만의 풍경이다.
2017 작업노트
나의 작업은 식물이 노화되면서 만들어내는 자연의 유기적인 현상을 통해 생명의 경계를 시각화 하는 것이다.
식물의 노화 과정 속에서의 짓무름은 죽음을 마주했던 순간의 기억을 상기시키며 인체 노화현상을 떠올리게 한다.
나의 촉각적인 경험들이 화면에 직접적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다양한 표현의 변화를 통해 그 경험들을 유추할 수 있는 여지를 둔다. 상기의 감각들과 자연의 변형에서 만들어지는 표피증의 갈라짐, 층의 분열 속 촉감에 주목한다.
식물은 건조된 표피처럼 얆은 한 층의 레이어로 표현하거나, 흐르는 붓 자국을 이용하여 짓무르듯 여러겹의 레이어로 표현한다. 소재는 나무 터널로부터 밑동, 나무 틈, 이끼 등으로 전개되면서 대상물과의 거리는 가까워지고, 구체적인 형태보다는 붓 터치 자체의 흐름과 그에 따르는 형상으로 변화한다. 화면 안 풍경은 적당한 습도와 적당한 일조량의 건강한 풍경 보다는, 습하고 어두운 풍경에 가깝다. 나는 이러한 표현을 통해 생명의 경계에 있는 시간의 연속적 또는 불연속적인 변화를 보여주고자 한다.
나는 한 화면 안에서 시각과 촉각 등 여러 가지 감각이 함께 구현되는 것에 목표를 두고, 경험했던 감각의 기억을 물질로 표현하고자 한다.
My work is to visualize the boundaries of life through nature’s organic phenomena, which are created by the aging of plants. Festering in plants’ aging process reminds us of the memories of moments in which we encountered death and recalls the aging of bodies.
My tactile experience is not directly revealed but it gives scope to infer experience through variations of diverse expressions. I focus on these senses, cracks made in the transformation of nature, and the texture in the splitting of layers.
Plants are expressed with single thin layers like dried skin or by the use of a running brush stroke that expresses several decaying layers. The subject matter of my painting is hollow tree trunks, stumps, and the moss and cracks on trees. In the process of creation, the objects gets closer and the images change to the flow of the brush stroke itself and are formed according to brushstrokes rather than concrete form. The landscape on the canvas is like a dark humid scene rather than a healthy scene with adequate humidity and sunlight. Through these expressions, I intend to present continuous or discontinuous changes of time which is on the boundary of life.
Aiming to represent several different senses together such as optical and tactile sensations in one canvas, I express the memories of the senses of my experience with the substance.